설 연휴 전날 퇴근길. 가까운 미용실에 들러 깔끔하게 주변머리를 다듬었다. 나이가 드니 숱이 많이 줄어들고 옆머리도 휑하여 조금만 자라도 영 보기가 좋지 않아 생각난 김에 빨리 깎았다. 주말에 처가에도 가야 하니. 머리를 깎고 동사무소에 들러 주민증을 만들고 돌아오는 딸과 와이프를 만나 장을 보았다.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 딸이 엄마와 즐겁게 이것저것 물건을 고르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난 눈에 띈 가리비관자를 구워 먹어 보고 싶어 한 팩 담아왔다. 매번 구워볼까 생각만 하던 것.
흔히 아는 가리비는 어린이 손바닥 만 한 것이라 가리비 관자가 이렇게 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큰 가리비'라는 종류가 따로 있나 보다. 가격은 7,800원가량이었는데 보통 다른 마트에서도 이 정도는 했던 것 같다. 중국산이라 가격이 싼 건지 사실 처음 구입해 보는 거라 시세를 잘 모른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정리하고 바로 '가리비 버터구이' 조리법을 찾아보았다.
레시피들은 보통 아스파라거스 구이를 곁들인다고 되어있는데 집에 아스파라거스가 있을 턱이 없다. 아쉬운 대로 어울릴만한 재료들을 찾아보는데 애호박과 마늘쫑, 느타리를 적당이 구우면 모양이 나올 것 같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버터 한 조각을 썰어 함께 녹인다. 버터는 성냥갑 정도의 사이즈. 식용유와 버터가 섞여 지글거리면 가리비를 올리고 굽는다. 너무 오래 구우면 질겨진다고 해서 1분만 구우라고 하는데, 도무지 1분 가지고는 잘 익어 보이지가 않아서 2~3분 정도를 구웠다. 그리고 색깔이 노릇노릇해야 먹음직스러우니 질겨지는 건 모르겠고 앞뒤로 넉넉히 구웠다. 관자를 굽다가 빈 부분에 애호박과 마늘쫑을 같이 넣고 볶는다.
관자는 약간 태우듯 구워야 맛있을 것 같다 색깔이 노릇하게 나오도록 익혔다. 다른 가니쉬들은 많이 태웠다. 관자를 접시 반쪽에 잘 담고 나머지를 구운 채소로 채운다.
기름에 구운 야채는 항상 맛있다.
마지막은 약간 입자가 살아있는 소금을 솔솔 뿌려 간한다.
적당히 내린 소금 입자들이 버터구이의 풍미를 더해줄 터.
이건 맨입에 먹기에도 심심하고 밥반찬으로 먹기에도 애매한 영락없는 술안주이다. 사실 익힌 조개에서 떼어먹는 조그만 관자를 떠올리고 좀 질기려니 생각했는데 웬걸 이렇게 식감이 아삭하고 좋을 수 없다. 질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푸석하지도 않고 적당한 쫄깃함에 조개 특유의 감칠맛이 잘 어우러진다. 나중에 선술집을 차리게 되면 좋은 메뉴가 될 일품요리. 냉장고에 조금 남은 백화수복을 한 잔 곁들여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풀어본다.
2025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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